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당시 스토아 철학자들은 ‘말씀’, ‘생명’, ‘빛’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초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우주의 원리를 추상적으로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단어들을 똑같이 사용하면서도 이 땅에 실제로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요 또한 예수님만이 참 빛과 생명 되심을 그들에게 깨우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태초에 상고에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분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님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17세기 독일의 시인 안젤루스 실레시우스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천 번을 나셨다고 해도, 내 안에서 나신 바 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잃어버린 자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을 믿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어둠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의 죄심을 대신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으로 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나는 죄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자유를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참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자연적으로 물러갑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하여 영생 얻게 하시려고 작은 시골마을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여물통인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이 초라하고 누추한 자리는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실상이요 현실입니다.
죄로 인한 상처가 곪아 터져도 치료할 줄 모르는 우리의 연약함과 완악함과 무지함을 아시기에
우리의 삶 가운데로 뛰어 들어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키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람이 되어 찾아오신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임을 알리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신나는 캐럴송을 듣고 있으면 예수님을 만나게 될까요?
선물을 주고받으면 예수님을 만나게 될까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고대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 중심에 좌정하고 계시는 성탄절을 맞이합시다.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빛 가운데 거하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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