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고 있는 성도 중에 알공예(Eggs Art)에 매우 조예가 깊으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사는 집에는 장식장마다 희귀한 알공예 작품들이 하나 가득 전시되어 있습니다.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함을 요구하는 것이 알공예인데 수많은 타조알들이 이 분의 손을 통해 독특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지요.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일도 여러 차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로는 알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그 열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그룹 성경공부의 리더로 쓰임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거기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그 일을 지속적으로 이뤄보고자 하는 것을 열정, 패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열정은,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해 열망을 가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열정에는 정확한 방향성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끝까지 완수함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사도바울이 바로 이런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사역을 위해 세상과 구별된 자로 나실인 서원을 통해 머리를 기르기도 하며 서원기간이 끝나자 새로운 각오로 머리를 깎기도 하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결과,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전 세계로 복음이 확산되는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사명인 영혼 구원하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바울을 볼 때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사역을 우선시 했다는 겁니다.
오래전 키르기즈스탄 의료선교사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치과병원을 하다가 다 접고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선교를 떠나셨던 가정인데 안식년이 되어 신학 공부를 하고자 미국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미국은 부족함 없이 풍족한 곳이네요 그런데 뭔가 갇혀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해요“
키르기즈스탄에서는, 밤이면 전기가 끊어지고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이불을 둘둘 말고 살아야 할 정도인데
이분들은 그곳이 낙원이요 천국 같다고 했습니다.
이 선교사님 부부가 그 열악한 선교지를 이토록 그리워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늘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헤아리며 선교를 후원하는 일,
가까운 곳으로 나가서 전도하는 일 등,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바울과 같이 심령의 머리를 깎고 온 열정을 다 쏟아내는 결단이 있어야할 줄 믿습니다.
영혼 구원의 사명을 열정을 다해 감당함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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