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뒤뜰에 있는 꽃나무 가지를 잘라주던 중 엄지손가락에 조그마한 가시가 박혔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였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그 부분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가시를 빼내려고 바늘로 이리저리 파헤쳤지만, 이미 살 속으로 깊이 들어갔는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시길 기도했는데 정말 이틀 후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손가락 하나만 아파도 온통 신경이 그곳에 집중됩니다. 큰 질병을 앓는 분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나마 손에 박힌 가시처럼 금방 해결이 된다면 몰라도 육신의 아픔이 오래 지속될 때에는 남모르는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한 육체의 고질적인 병이 그를 늘 괴롭혔습니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는데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간절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받고 고생하다 얻은 질병인데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하십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아마 섭섭해서 “이제 주의 일 그만 하겠습니다. 너무 힘들고 건강도 안 따라주니 여기서 이제 그만 손 놓고 쉬겠습니다.
주님이 안 고쳐주시는 걸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포기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질병이 오히려 교만방지용 제어장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갔기 때문입니다.
약함이 강함이 된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간절한 기도에 ‘No'라고 거절당한 것이 오히려 은혜가 된다는 것, 이것 역시 역설입니다.
우리 삶에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이 역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주님이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의 약함을 주님의 강함으로 바꾸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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