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백퍼센트라는 동의를 얻어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의 가치관이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엇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다수결의 원칙도 완전한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여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결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도 있지만
목적과 방향성이 잘못된 경우 공동체 전체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결정할 때에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이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는 방식이 항상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된 성경이 없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고 꿈으로 알려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우림과 둠밈, 제비뽑기, 제사장의 판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할 일은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내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문자화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무슨 결정을 하든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은 이러하니 이것을 하나님께서 꼭 들어주시고 내 손을 높이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편에 서 달라는 요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있으니 하나님도 이 사실을 알아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의 냄새를 풍기기까지 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에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참모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각하, 이렇게 어려울 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그의 말에 링컨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그것일세.”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설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귀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늘 내 목소리를 내고. 나의 한 표를 던지느라 하나님 말씀에 온전한 순종 한 번 못해본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길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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